봄은 가네

너무 바삐 가네

나, 조팝나무꽃 아래 도랑가에서

거울을 보네

거울속에 비친 모습, 한낮의 불청객은

창공에 휘날리는 비닐처럼

검붉은 그림자로 떠도네

그대

그리워하면 할수록

나 먼 바닷가 뻘밭을 서성이네

그 곳에 아득한, 피 멍진 해당화 눈물을 보았네

어느 해 인가

나, 조팝나무꽃 아래서 하필 가을을 기억했었네

하얀 그림자 실루엣으로 오버랩되어 파란바다를 건너네

비온 후 눈물 흘리는 봄
그 슬픈 보라의 꽃처럼...

봄은 너무 바삐 가네

봄의 그림자에 또 다른 응달이 드리우네

그 응달 골목, 소년이 연두의 그림을 그리네

먼 곳, 아주 먼 곳에서 그대 음성이 들리는 듯

나 봄밤 하얀 조팝나무꽃 눈물을 감히 훔치려 하네

이윽고

내 거울속 빨간 명자나무꽃 당신이 드리우네

벚꽃 진 자리, 그 밤 어느날엔가

눈꽃내린 하얀 언덕에 하얀 당신이 서 있었네

나 밤새

하얀 구름 조각내어, 당신 태워 몽환도로 달려가고 있었네

봄은 너무 바삐 가네

도로 위, 비바람에 흩날려 죽어간 꽃잎 꽃잎

난 봄의 뒷편 검은 그늘에서 하염없이 시계를 바라보네....